도시의 방랑자, 네루다가 던진 실존의 질문들

도시의 방랑자, 네루다가 던진 실존의 질문들

사랑과 송가를 넘어서

지금까지 우리는 연애시인 네루다와 일상의 연금술사 네루다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네루다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바로 현대 도시 문명 속에서 실존적 고뇌를 토해내는 철학자의 모습입니다.

1930년대, 네루다는 외교관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로르카, 알베르티, 알렉산드레 같은 '27세대' 시인들과 교유하며 새로운 시적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 『지상의 거주(Residencia en la Tierra)』 시집입니다. 여기에 수록된 "Walking Around"는 네루다 문학사상 가장 어둡고 복잡한 작품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20세기 도시인의 소외감을 가장 예리하게 포착한 걸작입니다.

도시, 현대인의 감옥

1930년대는 전 세계가 대공황의 그림자 아래 있던 시기였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전통적인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익명의 군중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네루다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고향 칠레를 떠나 타국의 대도시에서 생활하며, 그는 현대 문명이 인간에게 가하는 정신적 폭력을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나는 지쳤다, 내가 사람이 되는 것에 지쳤다"로 시작하는 "Walking Around"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시에서 네루다는 더 이상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적 시인도, 사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현자도 아닙니다. 그는 도시의 거리를 무작정 걸어다니며 삶의 무의미함과 마주하는 현대인 그 자체입니다.

시 읽기: "Walking Around"

네루다의 실존적 성찰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Walking Around"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 시는 산책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통해 현대인의 내면적 위기를 탐구한 20세기 문학의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원문 (스페인어)

Sucede que me canso de ser hombre.
Sucede que entro en las sastrerías y en los cines
marchito, impenetrable, como un cisne de fieltro
navegando en un agua de origen y ceniza.

El olor de las peluquerías me hace llorar a gritos.
Sólo quiero un descanso de piedras o de lana,
sólo quiero no ver establecimientos ni jardines,
ni mercaderías, ni anteojos, ni ascensores.

Sucede que me canso de mis pies y mis uñas
y mi pelo y mi sombra.
Sucede que me canso de ser hombre.

Sin embargo sería delicioso
asustar a un notario con un lirio cortado
o dar muerte a una monja con un golpe de oreja.
Sería bello
ir por las calles con un cuchillo verde
y dando gritos hasta morir de frío.

직역본

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지친다는 일이 일어난다.
나는 양복점들과 영화관들에 들어간다는 일이 일어난다
시들고, 꿰뚫을 수 없는, 펠트로 만든 백조처럼
기원과 재의 물에서 항해하면서.

이발소들의 냄새가 나를 소리 지르며 울게 만든다.
나는 단지 돌이나 양털의 휴식을 원한다,
나는 단지 상점들이나 정원들을 보고 싶지 않다,
상품들도, 안경들도, 엘리베이터들도.

나는 내 발과 내 손톱들에 지친다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과 내 그림자에.
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지친다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기분 좋을 것이다
공증인을 잘린 백합으로 놀라게 하거나
수녀를 귀의 일격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초록 칼을 가지고 거리들을 지나가는 것이
그리고 추위로 죽을 때까지 소리치는 것이.

의역본

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지겹다.
양복점과 영화관에 들어설 때면
시든 채로, 무감각하게, 펠트 천으로 만든 백조처럼
기원도 모를 잿빛 물 위를 떠다닌다.

이발소 냄새만 맡으면 목 놓아 울고 싶다.
그저 돌이나 양털 같은 평온함을 원할 뿐,
상점도 정원도 보기 싫고,
상품도, 안경도, 엘리베이터도 모두 보기 싫다.

내 발과 손톱이 지겹고
내 머리카락과 그림자마저 지겹다.
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지겹다.

하지만 유쾌할 것 같다
공증인을 잘린 백합 한 송이로 깜짝 놀라게 하거나
수녀를 귀 한 대로 때려눕히는 것이.
아름다울 것 같다
초록빛 칼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며
추위에 얼어 죽을 때까지 소리치는 것이.

"Sucede que" -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이 시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Sucede que"(~라는 일이 일어난다)라는 표현의 반복입니다. 이는 단순한 수사법이 아닙니다. 네루다는 자신의 피로감과 염증을 마치 자신과 무관한 객관적 현상인 것처럼 거리를 두고 관찰합니다.

"나는 지쳤다"가 아니라 "나는 지친다는 일이 일어난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시적 화자는 자신의 감정조차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사건으로 체험합니다. 이는 현대인의 소외 상황을 탁월하게 표현한 기법입니다.

펠트 백조의 은유

"펠트로 만든 백조처럼"이라는 비유는 이 시의 핵심 이미지입니다. 백조는 전통적으로 우아함과 순수의 상징이지만, 펠트로 만든 백조는 인조물, 즉 가짜입니다. 아름다움을 흉내 낼 뿐 진짜 아름다움은 아니죠.

시적 화자는 자신을 이 펠트 백조에 비유합니다. 겉으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의 생명력은 사라진 채 "기원과 재의 물" 위를 떠다니는 존재. 이는 현대 도시 문명이 인간을 어떻게 비인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은유입니다.

폭력적 환상의 의미

시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폭력적 이미지들("공증인을 백합으로 놀라게 하기", "수녀를 죽이기", "초록 칼을 들고 거리 활보하기")은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 폭력에 대한 충동이 아닙니다.

이 환상들은 모두 "기분 좋을 것이다", "아름다울 것이다"라는 가정법으로 표현됩니다. 즉,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상상 속에서라도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입니다. 네루다는 이를 통해 현대인이 얼마나 깊은 좌절감에 빠져있는지를 드러냅니다.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

"Walking Around"에 등장하는 공간들(양복점, 영화관, 이발소, 상점, 엘리베이터)은 모두 현대 도시의 상업 공간들입니다. 네루다는 이런 공간들이 인간을 어떻게 비인간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상품들, 안경들, 엘리베이터들"을 나열하는 부분에서, 인간이 만든 사물들이 오히려 인간을 압도하는 역설적 상황을 포착합니다. 이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의 상실'이나 게오르크 지멜이 분석한 '대도시의 정신적 삶'과도 통하는 통찰입니다.

실존주의적 성찰

"Walking Around"는 사르트르나 카뮈의 실존주의 문학보다 10년 정도 앞서 쓰인 작품임에도, 실존주의적 주제 의식을 선구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삶의 무의미함에 대한 각성,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몸부림 등이 모두 드러납니다. 하지만 네루다는 순수 철학적 성찰에 그치지 않고, 이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합니다.

네루다 문학 여정에서의 위치

"Walking Around"는 네루다 시 세계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초기의 낭만적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 현실과 대면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 시기의 경험은 후에 그를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민중을 위한 시인으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고 친구 로르카가 파시스트들에게 살해당하자, 네루다는 "나는 몇 가지를 설명하노라(Explico Algunas Cosas)"라는 시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의 시여, 너는 무엇을 했느냐? / 너는 왜 나무와 잎사귀를 노래하지 않고 / 피와 고통을 노래하지 않았느냐?"

현대적 공명

오늘날 우리가 "Walking Around"를 읽으면 묘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지하철에서, 쇼핑몰에서, 사무실에서 느끼는 그 무력감과 피로감이 80년 전 네루다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더욱 가속화된 비대면 문화, AI와 자동화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을 생각하면, 네루다가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펠트로 만든 백조처럼 겉모습만 흉내 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절망에서 희망으로

하지만 네루다는 절망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Walking Around"의 어둠을 통과한 후, 그는 개인적 고뇌를 사회적 연대로 승화시켰습니다. 『일반의 노래(Canto General)』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민중의 삶을 노래하고, 『원소 송가』에서 일상의 사물들과 화해하며, 말년의 연작들에서는 성숙한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Walking Around"는 네루다에게 통과의례와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현대 문명의 모순과 정면으로 부딪혀본 후에야, 그는 진정한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편에 걸친 네루다 시 여행이 마무리됩니다. 연애시인, 사물시인, 실존시인... 네루다의 다면적 모습을 통해 우리는 20세기 라틴 아메리카가 낳은 위대한 시적 정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